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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권영국 :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그에 대해 알아보자.

by kingcong 202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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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은 1963년 8월 15일 강원도 삼척군(현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에서 태어난 정치인이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일본 도쿠시마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 중이며, 가톨릭 신자로서 세례명은 ‘베드로’다. 그의 가족으로는 배우자와 자녀 두 명, 반려견 ‘말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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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은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법인 두율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민주노총 법률원장, 민변 노동위원장 등으로 노동 인권 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는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 세월호 참사, 용산참사 등 굵직한 사회적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에 참여해왔고, 경북노동인권센터 센터장과 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공익 법률 활동에 힘써왔다.

현재 권영국은 민주노동당 대표이자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민주노동당 공식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는 정의로운 노동사회 구현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진보 정당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정치 변화를 이끌기 위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권영국 : 갈아엎자! 불평등 세상


진보대통령 권영국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 슬로건

 

권영국은 대한민국의 엔지니어, 노동운동가, 그리고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다. 그의 인생 궤적은 정규 교육을 받기조차 어려웠던 가난한 청년이 철강공장 엔지니어를 거쳐 거리에서 인권을 지키는 변호사로, 그리고 제도권 정치를 통해 사회 변화를 꿈꾸는 진보 정치인으로 이어진다. 그는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처럼, 노동자들의 고통이 터지는 가장 아픈 현장에서 활동하며 그 이름을 알렸다.

그는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경북 문경에서 자라났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에 입학해 엔지니어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겪은 노동 현실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동료 노동자의 사망 사고, 그리고 그에 따른 회사의 무책임한 태도에 항의한 것이 해고로 이어졌고, 이 사건은 권영국에게 노동권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과제를 안겼다.

 

해고 후 복직을 위한 투쟁과 반복되는 수배, 구속, 복역은 그를 더욱 단련시켰다. 결국 그는 사법시험에 도전했고, 1999년, 10년의 해고 인생을 마무리 짓고 변호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그는 법정보다 거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철거민,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을 위해 싸우는 데 헌신했다.

그가 관여한 사건들은 한국 현대사의 노동, 인권, 재난 현장의 거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SPC와 쿠팡의 노조 파괴 의혹, 구의역 김군,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세월호 참사, 용산 참사, 이마트 불법 파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 문제까지, 그의 이름은 늘 그 현장과 함께였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의 운영조차 버거울 만큼 무료 변론과 저소득 노동자에 대한 헌신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거리의 변호사’라는 호칭은 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노동위원장을 역임하며 오랫동안 노동법 분야를 이끌었고, 민주노총 법률원 초대 원장으로서 민주노총의 법률 기반을 세우는 데도 기여했다. 특히 용산참사 조사 활동과 쌍용차 파업 사태 변호 과정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 국가의 책임 방기 등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정부와 재벌 권력의 무책임을 고발했다.

정치인으로서 권영국은 법의 한계를 절감하며 2015년 '시민혁명당' 창당 추진을 시작으로 현실 정치에 본격 뛰어들었다. 2016년과 2020년, 두 차례 총선에서 경북 경주에 출마했지만 보수의 아성 속에서도 10%가 넘는 득표율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진보정당으로는 드물게 영남 지역에서 지역기반을 다지며 지역 내 보수 독점 구조에 균열을 냈다. 이후 정의당에 입당한 그는 당의 노동 중심성 강화를 요구하며 정책과 방향에 선명한 목소리를 냈고, 2023년에는 정의당 제8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2025년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그는 원외 진보세력과 함께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를 주도하고, 그 경선에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꺾고 진보단일후보로 확정되었다. 정의당은 이 흐름을 받아들여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변경했고, 권영국은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로서 본선 무대에 섰다.

대선 토론에서 그는 노동, 기후, 복지, 성소수자 권리, 지역소멸, 탈원전 등 굵직한 이슈를 주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최저임금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 등에 있어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고, 보수후보들의 반노동, 반인권적 입장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준석 후보와의 격론, 김문수 전 장관에 대한 비판, 이재명 후보와의 차별금지법 논쟁 등에서 그는 진보 정치의 선명성을 보여주며 언론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모든 시민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정의, 국토의 균형발전, 국가의 공공 책임성을 주장하며 “진짜 노동의 대표 정치”를 지향했다. 구호 하나하나가 ‘심판’과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체제의 전환을 말하는 대선후보 권영국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는 선거에서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구조의 대전환이며, 지금까지 정치가 배제해 온 이들—해고노동자, 청년, 농민,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모두가 주인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영국에게 정치는 단지 권력을 잡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불평등한 세상을 '갈아엎기' 위한 실천이다.

권영국은 오늘도 말한다. "불평등한 세상, 갈아엎자!"

 

이발소 하루, 한, 영국, 엄마의 그림책 육아, 학력, 변호사, 젓가락, 나이, 디시, 재산, 군대, 지지율, 레드카드, 공약, 키, 트위터, 나무위키,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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