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는 1981년 7월 9일,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현재의 인천광역시 계양구)에서 태어난 전직 축구 선수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172cm의 키와 77kg의 체중을 가진 그는 주로 윙어로 활약하며 빠르고 기술적인 플레이로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2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후, 스페인 라리가의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해외 무대에도 도전했다. 그의 경력은 울산 현대, 레알 소시에다드, 페예노르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알 나스르 FC 등 다양한 클럽에서 이어졌으며, 특히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78경기 10골을 기록했다. 이후 그는 오미야 아르디자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5년에 은퇴했다.
은퇴 후, 이천수는 축구 행정과 심판으로 새로운 경로를 모색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전력강화실장으로 활동하며 구단 운영과 팀 전력 보강에 기여했다. 또한,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축구 발전을 위한 다양한 사회적 기여와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그는 축구의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적인 역할로 전환하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 기틀을 다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가 축구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천수는 개인적인 삶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2012년에는 심하은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으며, 종교도 불교에서 개신교로 개종했다. 축구를 넘어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천수: 축구 선수에서 방송인, 유튜버로의 전환
이천수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선수이자, 은퇴 후에는 해설자와 방송인으로 활동하며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선수 시절, 이천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 빠른 스피드와 정교한 킥 능력, 특히 프리킥에서의 탁월함을 자랑하며 많은 팬들에게 인상 깊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는 라리가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선수로, 2002년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친 후, 해외 무대에서 유럽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천수의 유럽 경력은 그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 채 종료되었고, 결국 다수의 구단을 전전하며 '저니맨'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은 여전히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이천수는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과 함께 불안정한 멘탈, 그리고 논란이 될 만한 행동들로 많은 화제를 모은 선수였다.
이천수의 플레이 스타일은 매우 직선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그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스피드와 방향 전환 능력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특히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은 기억에 남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뛰어난 경기력을 펼쳤고, 특히 그 당시 박지성, 차두리와 함께 '한국 축구의 미래'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천수는 종종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와 골 욕심으로 인해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으며, 멘탈 문제나 자기 관리 소홀로 그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은 국내에서 확고히 인정받았으며, 특히 프리킥과 침투 능력에서는 아시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해외 리그에서의 실패는 그가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으로 평가되며, 당시 유럽 무대에서의 적응 문제는 그 후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은퇴 후, 이천수는 축구계와 방송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해설자로서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축구 관련 프로그램에서 해설을 맡으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으며, 축구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천수는 방송을 통해 자신의 솔직한 면모를 드러내며, 과거의 논란이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명성은 '게으른 천재'라는 이미지와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박지성과 비교되는 그의 축구 인생은 많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현재의 이천수는 축구를 넘어선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과거의 불완전했던 면들을 극복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천수: 전설적인 축구 선수에서 방송인으로의 변신
이천수는 대한민국 축구의 전설적인 인물로, 그의 뛰어난 경기력과 국제적인 성과는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축구 선수로서의 여정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은퇴 이후에는 방송인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대중과 소통을 이어갔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천수의 축구 인생과 그가 걸어온 방송인의 길을 살펴보겠다.
1. 이천수의 축구 경력: 기록과 성과
이천수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활약하며 K리그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2005년에는 K리그 MVP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으며, 그 해 K리그 베스트 XI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천수의 눈부신 활약은 K리그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는 울산 현대를 이끌고 슈퍼컵, A3 챔피언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과는 그의 축구 인생에서 중요한 이정표였다.
이후 그는 유럽으로 무대를 옮겨, 네덜란드의 페예노르트에서 2년간 활약했다. 그가 유럽에서 얻은 경험은 그의 축구적 성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국제 무대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4위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올렸다. 특히 2002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또 다른 성과를 이루었다.
이천수는 또한 여러 차례 K리그에서 득점왕, 도움왕 등의 타이틀을 차지하며 다재다능한 공격수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가 기록한 골과 어시스트는 여전히 많은 축구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2002년 K리그에서 그는 뛰어난 활약으로 K리그 영플레이어상, K리그 도움왕,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 등의 수상 경력을 쌓았다.
2. 은퇴 후 방송인으로의 전환
이천수는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친 후, 자연스럽게 방송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방송계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그가 축구 선수 시절에 이미 여러 방송 매체에 출연한 경험이 있었기에 방송 세계로의 전환은 그에게 익숙한 길이었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계기로 그는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는 방송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천수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개성 있는 모습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라는 독특한 별명으로 참가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의 입담과 유머 감각은 방송계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1대 100, 무한도전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며,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의 방송 활동 중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바로 축구 해설자 역할이었다. 이천수는 JTBC3 FOX Sports에서 K리그 클래식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해설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특히 선수들의 정보 부족과 비판적인 해설로 인해 팬들의 불만을 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해설에 대한 평가는 점차 나아지기도 했다.
3. 개인적인 삶과 새로운 도전
이천수의 방송 경력은 단순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가족과 함께한 일상도 공개하며 대중과 소통했다. 특히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딸 이주은과 쌍둥이 남매와 함께 출연하여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그는 더욱 친근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며, "가정적인 아빠"로서의 면모도 강조되었다.
2020년 이후, 이천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에서 김민경의 축구 코치로 출연하며,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구를 가르치는 모습을 선보였다. 그의 입담과 온화한 교육 방식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의 유튜브 채널은 큰 인기를 끌었다.
4. 방송계에서의 도전과 한계
이천수는 방송계에서 성공적인 길을 걸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과거의 이미지나 입담에서 오는 논란도 존재했다. 방송에서의 실수나 과거의 발언이 때때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그의 자신감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때가 있었고, 이는 대중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천수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며, 방송에서 점차 더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방송 활동은 유머와 진지함을 동시에 추구하는 독특한 스타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방송의 특성상, 그가 항상 긍정적인 반응만을 얻을 수는 없었다. 여전히 그의 입담이나 스타일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방송에서의 존재감을 계속해서 강화해나갔다.
5. 결론: 이천수의 여정
이천수는 축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그 후에도 방송인으로서 새로운 도전과 성공을 이어갔다. 그의 축구와 방송 활동은 그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주었으며,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앞으로도 이천수는 축구와 방송, 그리고 그가 관심을 두는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해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만들어 온 기록과 업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설이 되었으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이천수: 인천 유나이티드 FC 전력강화실장
1. 선임 과정
이천수는 2018년 10월, 고향이자 친정팀인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비상대책위원회 멤버로 합류했다. 당시 인천 구단은 박남춘 전 시장이 부임한 이후 조직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구단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천수를 불러들여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이천수는 선수 시절 인천에서 활약하며 구단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복귀는 팬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인천 팬들의 환영의 목소리에는 복귀한 이천수에 대한 기대보다는, 당시 인천 구단의 대표이사였던 강인덕의 퇴임을 원했던 목소리가 더 컸다는 점에서 복잡한 여론이 존재했다.
2018년 11월, 이천수는 전력강화부장으로 내정되었고, 이어서 12월 28일, 인천 구단의 주주총회에서 강인덕 대표이사가 해임되면서 인천에서의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2. 2019 시즌
2019년 시즌을 앞두고 이천수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력강화 업무를 주도하며 프리시즌 이적시장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다. 이천수는 새로 영입된 선수들에게 직접 설득을 하는 등 구단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이재성과 같은 선수는 이천수의 추천에 따라 인천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의 설득력 있는 영입 활동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팀 전지훈련에도 동행하는 등 코치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면서 팀은 예상과 달리 성적 부진에 빠졌다. 특히 이천수가 영입한 선수들 중 일부가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였고, 부상이나 부진이 이어져 팀은 끝없는 하위권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이천수에게도 돌아갔다. 팬들은 그의 과도한 이적시장 개입과 구단 외적인 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특히 유튜브 활동과 국가대표 비판 등의 행동이 구단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인천의 주요 선수인 남준재가 트레이드되면서 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일었고, 이천수는 구단 간담회에서 남준재 측이 이적을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적의 최종 책임이 그에게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후, 여름 이적시장에서 대규모 선수 영입을 단행하며 일부 성과를 얻었고, 그 결과 인천은 강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선수를 영입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많았다.
3. 2020 시즌
2020 시즌을 앞두고 이천수는 또 한 번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다. 유상철 감독의 유임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고, 결국 유상철 감독은 퇴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임 감독 선임이 지연되면서 팬들의 불만은 커졌고, 감독 선임 과정에서 이천수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임완섭 감독이 선임되었지만, 그가 원하는 선수 영입은 늦어져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즌 초반부터 팀은 끔찍한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2무 7패라는 성적을 기록한 임완섭 감독은 결국 사퇴하게 되었다. 이천수는 감독 선임 문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팀 분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구스타보라는 선수의 영입을 결정했지만, 그에 대한 의문은 팬들 사이에서 일었고, 구단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결국 이천수는 2020년 8월, 전력강화실장직에서 사퇴하게 되었다. 그의 사퇴는 인천 구단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지만, 그동안의 갈등과 논란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4. 평가
이천수의 프런트 활동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천수는 공격적인 이적시장 운영을 통해 몇 명의 잠재력 있는 선수를 영입했지만, 그 선수들이 팀에 적절히 융화되지 못하면서 팀 운영에 혼란을 초래했다. 또한, 감독 선임의 지연과 팀 내부의 갈등 조정 부족 등은 이천수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이천수가 떠난 후, 임중용 실장과 전달수 대표이사 체제에서 인천 구단의 운영이 정상화되었고, 그때부터 인천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이천수는 뛰어난 선수 발굴 능력을 보였지만, 구단을 운영하는 데 있어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그의 외적인 활동이나 개인적인 행보가 구단 운영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구단의 성적 부진과 직결되었다.
5. 축구 심판 경력
이천수는 2021년, 과거 축구장에서 보여준 거친 성격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축구 심판 자격증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2021년 6월, 한국축구협회(KFA) 5급 심판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며, 이 과정을 유튜브 콘텐츠로 공개하며 팬들과 소통했다. 이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활동으로,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6. 해설자 경력
이천수는 해설자로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JTBC GOLF&SPORTS에서 K리그 해설자로 참여했으며, 2023년부터는 TV조선의 국가대표 A매치 해설자로 나섰다. 그의 해설은 과거 선수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시각을 제공하며,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7. 정치 및 유소년 축구 클럽 활동
이천수는 축구 외에도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유세를 돕기도 했으며,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원희룡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 이천수는 정치적 색깔에 대해 "정치색은 없다"고 주장하며, 원희룡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유소년 축구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제주도에서 이천수 축구클럽을 운영하며, 유소년 선수들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이천수 축구클럽은 그의 축구 경험과 철학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8. 여담
이천수는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모두 득점한 몇 안 되는 한국인 선수 중 한 명이다. 또한, 2002년과 2004년 올림픽에서는 연속으로 득점을 올리며 한국 축구의 역사를 썼다. 그의 뛰어난 프리킥 능력은 지금도 회자되며, 현역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했다.
이천수는 또 다른 별명인 '리춘수'로도 유명하다. 그는 스페인 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활약할 당시 현지 팬들에게 '리춘수'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 별명은 그의 유튜브 채널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결국, 이천수는 축구계의 풍운아이자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하면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가 구단 프런트에서 겪었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얻은 교훈은 한국 축구와 구단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